프랑스의 계몽주의자인 볼테르는 단테의 <신곡>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신곡은 읽지 않는 책으로 유명하다."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말이다. 그러면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쌍벽을 이루며 기독교 세계를 대표하는 <신곡>이 그처럼 널리 읽히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전문가들은 그들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나, 나로서 외람 되게 한마디 말한다면, <신곡>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지옥편 및 연옥편 전체가, 인간의 본성이 무엇보다 기피해 마지않는 죄악의 문제에 대한 심각하고도 무자비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곡>이 읽히지 않는 것은 <신곡>의 위대성을 증명할지언정 손상은 가하지 못한다.
나는 일찍이 젊은 날 <신곡> 강연에 참석했던 밤에 차마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었던 두려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단테는 지옥 순례에서 친구와 동지와 은사, 그리고 그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당한 처참한 형벌을 목격하고, 동정심을 이기지 못하여 여러 차례 졸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스승 베르길리우스는 이러한 단테에 대해 격심한 책망을 내린다. 죄악에 대한 그와 같은 동정적인 태도는 하나님의 정의의 절대성에 대한 불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죄악을 사회와 환경에 돌리는 인도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인 성향의 현대인이 <신곡>에 대해 냉담하고 무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괴테 역시 <신곡>에 대해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단테는 소년 시절 베아트리체에 대한 순결한 사랑으로도, 청년 시대의 시력을 손상당할 정도로 정진했던 철학으로도, 장년기의 피렌체 최고 집정관이라는 현세 최고의 명예, 지위, 권력으로서도 인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인생 행로 절반인 35세에 이르러 그는 비로소 죄의 문제로서 인생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했다. 그런 삶의 역정을 거친 단테의 우주시(宇宙詩) <신곡>은 인류의 죄악에 대한 준엄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영혼이 우주편력을 하던 그 날, 그가 사랑하던 피렌체는 영겁의 고뇌와 멸망을 부르짖는 지옥문에 불과했으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니, 그의 은사 베르길리우스마저도 모두 지옥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신곡>이 오랜 동안 교황청에 의해 발매가 금지된 것도, 단테가 수많은 교황, 성직자들을 사정없이 지옥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곡에서의 죄의 분포를 통해 기독교의 죄악관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다음의 분류표를 주목하기로 한다.
지옥문전 - 비열한 자들
전(前) 지옥 - 불신죄: 이교의 유덕자들, 어린아이들 ----------제1옥(獄)
상부지옥 - 방종죄: 음행자 --------------------------------제2옥
탐식자--------------------------------------------------제3옥
인색한자, 낭비자-----------------------------------------제4옥
분노자--------------------------------------------------제5옥
하부지옥 - 이단죄 ---------------------------------------제6옥
폭행죄--------------------------------------------------제7옥
대(對) 타인 : 살상, 파괴, 겁탈자-------------------제1원(圓)
대 자기 : 자살, 도박, 재산 탕진자 ------------------제2원
대 하나님 및 자연 : 신성모독, 남색, 고리대금-------제3원
의지죄(意志罪), 비신뢰관계에 의한 기만행위-----------------제8옥
여자 유괴자-----------------------------------제1낭(囊)
아첨자----------------------------------------제2낭
성직, 성물(聖物)에 대한 모독자------------------제3낭
복술가(卜術家)--------------------------------제4낭
탐관오리
위선자
절도
모함자
분쟁자
사기꾼
특수 신뢰관계에 대한 반역행위----------------------------제9옥
대(對) 근친--------------------------- 카인
대 조국 ------------------------------안테노라
대 친구 ------------------------------ 토로메아
대 은인------------------------------- 가룟 유다
이상에서 보는 대로, 단테의 지옥의 죄의 분류에서 우리는 몇 가지 생각할 점을 발견한다.
첫째, 인생에 대해 선악간 태도를 명백히 하지 않고 다만 유희를 하는 기분으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주의(主義)도 신념도 이상도 없이 산, 비열한 도덕적 중성자들, 인격적 무적자(無籍者)들은 지옥에 들어갈 자격도, 가치도 부여받지 못한다. 단테는 그들을 지옥문 밖에 방치함으로써 인생이 얼마나 진실하고 엄숙해야 하는가를 웅변해주고 있다.
둘째, 죄악의 경중(輕重)에 대한 관념이 오늘날 우리의 그것과는 정반대인 점이다. 우리는 흔히 단테가 가장 무거운 죄로 여겨 하부 지옥에 처넣은 정신적인 죄, 의지적인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무거운 죄라고 여기는 것은 보통 본능적인 방종이나 폭행 등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결을 보아도, 폭력, 절도 등의 잡범에 비해, 사회 지도층의 비리, 부정부패 등에 대해서는 훨씬 관대한 형사 처벌을 가하고 있다. 단테는 이러한 우리의 죄악관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천박한 것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자신이 세리와 죄인들과는 식탁을 함께 하여 친근히 하시면서도, 서기관, 학자, 헤롯당, 바리새인, 사두개인에 대해서는 이를 누룩이라, 여우라, 독사의 자식이라 하여 분노를 터뜨리신 심정을 단테를 통해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조선에서도 지옥적인 존재는 역시 경제인과 지식인, 정치 지도자와 교육자, 그리고 종교가들이다. 폭력, 절도를 저지르는 잡범보다는 정신의 죄, 의지의 죄를 저지르는, 이른바 지도자들의 죄악이 훨씬 무거운 것이다. 그러므로 직원들의 사무실보다는 사장실이, 교실보다는 교무실이, 지방의회보다는 국회가, 일반 교회보다 당회, 총회가 더욱 지옥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반역자 유다로 대표되는 지옥 가장 깊은 곳의 죄악은 우주의 창조신과 인류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불신, 반역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지옥의 모든 개개의 지옥의 근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한 기독교가 도덕의 종교가 아닌, 유일신에 대한 신앙의 종교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서연구> 제6호(1947년 12월)
보티첼리(Botticelli)가 그린 단테의 지옥입니다.
수직으로 자른 단면도입니다.
고리 모양의 둥근 구덩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원이 작아지죠?)
(역사 상식 한토막---중세 유럽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중세인들이 지구를 평평하게 네모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크게 오해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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