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기를 쓰고 악을 써서 외쳐 보았어도 우리는 이스라엘 역대의 선지자들 이상으로 외칠 역량이 없음을 깨달았다. 교회의 강대상과 교권자의 궤변에 대해, 사자보다 우렁차게 외친 모세의 율법이 있었고, 다윗의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등의 질책이 있었다. 사도들의 교훈과 그리스도 자신의 날카로운 외치심이 진동하고 있다.
그러나 교권자들의 고막을 흔들기에는 마태복음 23장(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으로 꾸짖음)도 오히려 약할 뿐이요, 예레미야의 한숨 소리도 종교 유희에 몰두하고 있는 교회인에게는 창구멍으로 새어드는 바람 소리에 불과하다. 이는 외침이 약한 까닭이 아니요, 일부러 귀를 막았거나, 또는 생명이 고갈하여 감각을 잃은 자들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성서조선>은 나 홀로 크게 외치려고 자부하지도 않고, 오직 믿음으로써 살아 존재하고자 할 뿐이다. 오늘과 같은 때에는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진리를 파악하고 존재하는 일, 그 일 자체가 사업이요 외침이 된다.
김교신 <교회와 우리의 관계> (193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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