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마감하면서 무위로 끝난 #번역청을설립하라 아젠다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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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청 설립을 주장한 것은, 1960년대 중반 시인 김수영이 처음이다. 그후 1967년에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번역청 설치 당위성을 언급했다. 1980년대에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김용옥이 번역의 중요성을 언급해서 큰 주목을 받았다.
2. 나는 번역을 정상적 학문활동으로 인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이에 대한 지원을 제공할 경우 인문학 위기 극복에 디딤돌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다수 여론'을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구체적인 정책 실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3. 이 아젠다가 책을 꽤나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는 층에서나 공감할 수 있는 사안이라, 인문계 대졸자 중에서도 100명에 한 명 그 중요성을 이해할까말까다. (인문학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교수라고 모두가 독서인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논문쓰기에 특화된 기능인이다. 그들의 독서는 독서라기보다는 자료 조사일 뿐.) 작년 연초 국민청원에 9417명이 동의해 주셨는데, 이게 번역청 여론 형성의 최대치라고 본다. 1만명이 못된다. 그러니 다수결에 의한 여론형성으로는 번역청 설립이 어렵다는 것이다.
4. 결국 선각자적 마인드를 가진 정책결정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데, 우리에겐 이런 정치인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런 정치인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인문학 토대 확립이니, 번역청이니 하는 주제는 100년, 500년을 바라보는 장기 비전인데, 5년짜리 정권에서 이런 정치인이 나오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검찰개혁 등 단기적 해결과제가 얼마나 많은가.)
5. 586 정치인들부터가 지적 성장과정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할 기회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휴가때 선정한 독서목록을 보라. 한국 지배 엘리트의 빈약한 독서수준이 한눈에 드러난 사례라고 본다.
6. 그러면 나는 왜 달걀로 바위치기 같은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별거 없다. 21세기초에 이런 주장이 있었노라는 기록이라도 남기겠다는 것이다. '역사적 알리바이'를 남기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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