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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읽기

[노트북을 열며] ‘엄친딸’ ‘엄친아’가 이끌 법조계

by 안티고네 2011. 1. 18.

[노트북을 열며] ‘엄친딸’ ‘엄친아’가 이끌 법조계

“결론만 정해주면 판결문 정말 잘 쓰는데,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판단하라면 말끝을 흐리는 판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부 검사들은 피의자를 부르기 전에 컴퓨터에 예상 질문과 답변을 미리 쳐놓는다고 합디다. 그게 무슨 조삽니까.”

 요즘 법조인들과 만나 “젊은 후배들은 어떠냐”고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자신이 겪은 배석판사들에 대해 “재판을 다 끝낸 다음에도 판단에 자신이 없어 할 때가 많다”고 했다. 특히 이런 경향이 법조계의 새로운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외고(外高) 출신’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수사를 받는 피의자를 검찰청에 보내놓으면 제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돌아옵니다. 검사들이 예상 질문·답변을 준비해놓고 조사 내용에 맞춰 수정한다고 하니….” 그는 “(검사가) 조사 도중에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으면 피의자와 검사 사이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검승부가 이뤄지겠느냐”고 되물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몇몇 법조인들은 “젊은 판·검사들이 대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사법시험 치를 때까지 부모가 정해준 스케줄에 따라 성장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로드 매니저’인 엄마가 승용차로 실어나르며 학원과 교재, 심지어 친구도 정해주다 보니 상황을 판가름하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춘기에 반항도 하고 방황도 해봐야 ‘자기 생각’이 굳건해질 수 있다. 성장기의 정신적 방황이 수능 점수엔 나쁜 영향을 미칠 테지만, 길게 보면 인생의 자양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다이제스트’로 편집된 수능용 교재가 아니라 철학이나 역사, 소설 책을 껴안고 불면의 밤을 보내봐야 한다. 그래야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눈이 트일 수 있다. 더욱이 판사와 검사는 기본적으로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을 둬야 하는 직업이다. 한 대형 로펌 대표는 “변호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사실 1~3년차 변호사들은 로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요즘 의뢰인들은 인터넷을 뒤져 관련 판례나 기록을 다 찾아옵니다. 이제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건 법률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법적 판단력입니다.”

 지금까지는 판사나 검사의 머릿속에 있는 정치적 나침반에 따라 판결하고 수사하는 게 문제가 돼온 시대였다. 하지만 ‘엄친딸’ ‘엄친아’가 단독 판사로, 재판장으로, 부장검사로 참여하게 될 재판과 수사가 현재와는 또 다른 문제점을 노출할 것이란 우려가 든다. 과거 세대와 달리 어학 실력과 국제화 마인드를 갖추고, 유연한 자세와 신선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일 것이다. 이들이 이끌 재판과 수사가 과연 국민을 위해 바람직할까. 변호사자격시험 준비 학원이 돼 가고 있다는 로스쿨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신세대 법조인들의 장점을 북돋우고 취약점을 보완할 것인가. 법조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이슈다.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