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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한글 콘텐츠 확충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한글이 일본의 '가나(假名)'보다 600년, 영어의 원형인 로마 글자보다 무려 2,000년 뒤에 '창제'된 글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형 컴퓨터가 신형 컴퓨터를 못 당하듯이 최신형 문자가 우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학성이 있다고 저절로 경쟁력이 생길까. VTR 시장에서 앞선 기술력을 자랑한 베타 방식이 풍부한 콘텐츠의 VHS 방식에 밀려 도태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에 쓴 산문에서 '1930년 생'을 기준으로 세대를 구분했다. 1930년 이전에 태어난 '구세대'는 해방되던 1945년에 15세 이상이었고 따라서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반면 1930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는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세대이다. 김수영은 구세대가 일본어를 통해 문학의 자양을 흡수한 데 비해, 신세대는 일본어 해독 능력의 결여로 인해 지적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김수영은 신세대 문학 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한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에서 차단된 그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츠를 일본어 못지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국운(國運)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김수영의 시대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을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 정부에 '번역국'을 따로 두고 집약적으로 수만 종의 서양 고전들을 번역했다. 그들이 19세기말에 번역한 고전 가운데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다. 많은 대학에서 번역을 연구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일부 인문학자들은 번역의 필요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마저 없는 실정이다.
모든 국민에게 영어로 읽으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일이다. 작년 7월 28일부터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제18차 세계 언어학자대회는 소수민족 언어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과 보존계획 수립을 주요 의제로 삼고, 인간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21세기에 독창적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번역을 통한 한글 콘텐츠의 확충은 결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그 안에 담긴 음식이 함량 미달이라면 허망하다. 허기진 배로 아름다운 그릇만 상찬해서 무엇하겠는가. 우리가 한글보다 과학성이 뒤떨어진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폭 넓고 수준 높은 지식, 즉 콘텐츠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글의 과학성만 뽐낼게 아니라 그 안에 담을 콘텐츠를 풍부하게 해야 할 때다.
4ㆍ50대 연구인력 활용을
인문학 위기론이 팽배한 현 시점에서 그나마 인문학 연구인력이 가장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세대는 40대와 50대다. 그 아래는 학문 후속세대의 단절이 우려될 정도로 '실용'에만 몰두하는 형편이다. 정부는 이들 연구 인력이 더 늙기 전에 한글 콘텐츠 확충을 위한 번역 사업에 대대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친다면 뒤늦게 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마땅한 인력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후손들에게 못난 조상이라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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