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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 선생

[박상익][문화일보] 무교회주의 헌신 노평구선생 1주기에 부쳐

by 안티고네 2005. 3. 6.
도덕성 회복 강조 ‘성서연구’ 창간
무교회주의 헌신 노평구선생 1주기에 부쳐
애국지사이며 무교회주의자인 노평구 선생이 별세한지 벌써 1년이 되었다. 함북 경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린 시절 길에서 신문지 한장을 주워도 파출소에 갖다 주게 할 정도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선생은 배재중 3학년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해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서울 마포구 도화동 빈민촌에서 빈민아동 교육에 종사했다. 자연스럽게 사회운동, 정치운동 등의 많은 유혹이 뒤따랐다.

그러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성서조선’을 간행하던 김교신선생을 찾아 가르침을 받은 후, 종교적 신앙에 입각한 도덕적 깨우침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젊은 날 스승 김교신을 통해 무교회주의 기독교신앙을 갖게 된 선생은 1946년 신앙잡지 ‘성서연구’를 창간하여 1999년 12월까지 모두 500호를 간행했고, 일생 서울 종로 YMCA에서 수십명의 청중을 놓고 성서집회를 개최하면서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강조했다.

선생은 우리 국민의 정치지상주의를 경계하면서 도덕적 각성과 정신적 자각만이 살 길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우리는 제발 문제를 천박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투표로 민족이 개조되고, 투표함으로써 이상국가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10년 전에 우리는 역시 일본의 총독정치만 무너지고 일본이 물러가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역시 오산이었다. 결국 정치적 각성이란 불평·시기·욕심 정도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반세기 전에 쓴 선생의 글은 지금 봐도 새롭다. 선생은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민중의 결속과 민중의 자각이란 결국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정도의 현실적인 욕심이었지, 깊은 양심의 뉘우침, 자기의 죄악에 대한 회개나 통곡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선생은 무엇보다도 먼저 선을 행하고, 정의를 행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며, 이를 명심하지 않는 한 우리 현실이란 백년하청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일제시대, 해방정국, 한국전쟁, 전후 재건, 정쟁과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선생은 철두철미 민족의 도덕적 각성과 영혼의 신생(新生)을 부르짖는 예언자이고자 했다. 도덕적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민족은 장차 파멸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선생의 외침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오는 1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YMCA 6층 지란방에서는 선생의 1주기 기념 강연회가 치러질 예정이라고 한다.

/ 박상익 (우석대 교수·서양사)
기사 게재 일자 2004/09/10

 

http://www.munhwa.com/people/200409/10/20040910010129271360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