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문화는 삶이다
[문화로 읽는 세상] 문화는 삶이다
경향신문 2006년 3월 22일자
〈최준식/이화여대 교수·한국학〉
얼마 전 서울시는 서울을 문화예술이
숨쉬는 ‘인간중심의 도시’로 만든다면서 야심에 찬 계획을 발표했다. 예산이 7조원 이상 들어간다고 하니 엄청난 계획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내용을 죽 살펴보니 또 예술 중심으로 짜여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것은 우리가 문화를 협의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예술 문화만을 문화인 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개각에도 문화부 장관에 이창동 전 장관과 같은 예술인을 앉혔다. 예술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다. 문화란 삶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란 생활과 다소 동떨어진 곳에서 다른 복장을 하고 무언가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연극이든 연주든 공연장에 가는 것만이 문화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이 늘 접하고
즐기는것-
그래서 전국 곳곳에 공연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가 선유도에 지으려고 하는 대규모 공연장이다. 이번
계획에도 공연장을 200곳으로 늘리고 무대 제작비도 대폭 올리는 등 공연 쪽에 엄청난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만일 공연장 만드는
것만으로 한국인들의 문화의식이 높아진다면 동 마다라도 공연장을 하나씩 짓겠다. 그런 곳에 가서 수준 높은 작품들을 감상만 해도 문화의식이
높아진다고 한다면 세상없이 좋겠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공연문화는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자신들의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와 관련해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음악문화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러면 여러 대답이
나오는데 내가 생각하는 답은 노래방 문화라는 것이다. 문화란 어디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매일매일 접하고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거개의 한국인들이 가장 즐기는 음악문화는 노래방 문화일 수밖에 없다. 그런 한국인들에게 공연장만 자꾸 지어 놓아봐야 우리
일상생활과는 겉돌기 때문에 그런 곳에 잘 안 가게 된다.
그런 공연문화는 서양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체질에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연장을 짓기보다는 국민들의 문화의식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 문화의식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책을 읽어야 한다. 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미국의 한 잡지사에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역사를
바꾼 100대 사건을 조사해 기사를 실었는데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을 꼽았다.
왜 그랬을까? 책을
통해서만이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있어야 정보를 축적할 수 있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에는 책 이외에도 다른 것이 있지만 책을 능가할 만한 수단은 없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해도 책이 있고 난 다음에 인터넷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서울시 계획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도서관을 100개 증설하겠다는 것이다. 반갑기 짝이 없었다.
-책을 통해서만
비약적 발전-
우리 국민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은 정평이 나있다. 물론 우리 개개인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도서관이 제대로 없는 게 더
큰 문제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도서관에 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도서관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화여대 도서관을 잘 이용하지 않는데
그것은 보나마나 내가 필요한 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죽음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도서관을 뒤졌는데 쓸 수 있는 자료는 한두 권
정도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참담함을 느끼면서 아마존에 주문해서 책을 사볼 수밖에 없었다. 대학도서관이 이 모양인데 공립도서관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저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가끔 지방의 공립도서관에서 내가 쓴 책을 기증하라는 편지를 받는다. 그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아니 예산은 어디다 쓰고 저자한테 기증을 받겠다는 말인가? 한국인들은 아직도 책을 경시한다. 내가 책을 내면 친구들은 으레
한 권 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동차 판매하는 친구에게 차종이 바뀔 때마다 차 한대씩 달라고 하면
되겠냐고 말이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미국 유학 시절 주말이 되면 머리가 허연 백인 할머니들이 군(카운티)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모습을. 우리 국가 경쟁력은 다른 데에서 오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연장을 짓기 이전에 도서관을 더 많이 짓자. 그리고
도서관 짓는 데 든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서 책을 사놓자. 그러면 우리 국민들도 책을 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