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가족주의와 독립정신

안티고네 2001. 7. 17. 11:54

나에게는 단신으로 월남한 조카가 하나 있다. 나이는 30이 다 되었다. 그 동안 나는 그에게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생활은 물론 공부도, 취직도 장사 밑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사실 돈 한 푼 쥐어준 일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밤늦게 나를 찾아와, “그 동안 오랫동안 독립을 위해 애를 많이 썼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당장 침식이 곤란하니 당분간이라도 머물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정체 모를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나의 손바닥만한 셋방에 외인(外人)까지 둘 수는 없고, 자기 자식마저 부양을 못하는 터에 외인은 더욱 할 수 없는 일이고, 도대체 나의 “일”에 장해가 되니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밤도 깊었는데 그는 묵묵히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심중 그가 문밖에서 자살이라도 하지 않았나 하고 걱정되었다. 그러나 차마 뒤따라 나가지는 못하고, 아침 일찍 문을 열어보고는 가슴을 쓸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독자 중에는 나의 이런 처사에 대해 이맛살을 찌푸리고, 이는 도무지 인간의, 아니, 그리스도인의 도리가 아니라고 나무랄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이 봉건적인 가족주의가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을 침해하고, 나아가서는 개성을 죽이고, 인격 관념을 말살해 버리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바이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민족, 사회 전체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사실 오늘날 사돈의 팔촌까지 서로 어울려서 개인의 사명도, 직책도, 책임도 돌아보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와 민족과 공적인 일들을 그저 먹자판으로 만든 것은, 그 배후에 이 가족주의라는 독사가 몸을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좀 읽은 사람은 서양 중세 봉건시대의 심한 당쟁이 역시 가족주의와 깊이 연결되었던 것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 아직도 민족의 고질로 남아 있는 우리의 이 극심한 당파 근성도 오직 이 동양적이고 봉건적인 가족주의의 청산에 의해서만 지양(止揚)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점에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애정도 금물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이 과거 미국 샌프란시스코 어느 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 보이 노릇하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을 만났을 때, 그에게 대통령의 아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라고 대답하더라고 한다. 과거 사돈의 팔촌까지 가족끼리 서로 도와 공부한 우리 북청 물장수의 자녀들이 대체로 일제 치하에서 민족을 도외시하고 비인격적인 관료주의 인생관에 떨어지고 말았는데, 이 역시 가족주의에 의한 독립 정신의 상실 때문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가족주의의 이 폐해가 우리에게 있어서 국가, 민족, 사회, 정치, 개인 할 것 없이 온갖 면에 이치고 있지만, 그것이 기독교 신앙 면에까지 치명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기독교 신자가 독립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직결하지 못하고, 소위 교회주의로써 목사와 장로와 교사를 중심으로 끼리끼리 모여서 파벌적인 싸움질만 하는 것도 이 가족주의의 병폐 때문인 것이다.

그까짓 정치나 사회 질서는 차치하고, 이 때문에 실로 종교도 학문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일이다. 이것이 내가 조카에게 실례를 저지른 공적 이유 이니 독자들의 깊은 양찰을 바라는 바이다.

『성서연구』 제67호 (1957년 3월)






"더욱 두려운 것은, 가족주의의 이 폐해가 우리에게 있어서 국가, 민족, 사회, 정치, 개인 할 것 없이 온갖 면에 이치고 있지만, 그것이 기독교 신앙 면에까지 치명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기독교 신자가 독립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직결하지 못하고, 소위 교회주의로써 목사와 장로와 교사를 중심으로 끼리끼리 모여서 파벌적인 싸움질만 하는 것도 이 가족주의의 병폐 때문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