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회 자료

[독자와의 대화]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의 정신'

안티고네 2001. 6. 18. 19:57

독자 000 님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미적분 공부하다가... (000 님)


의대생이 미적분 공부를 해야 한다니

좀 이상한 면도 없지 않지만, 한때 수학

자를 꿈꾸었던 저로선 일생의 마지막 수학

시험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랍니다.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었는데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도 말입니다.

예전에 신문에서 무교회주의에 대해서

읽었을때는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한다고

읽은 것 같았는데 교수님 글을 읽으면서

점점 교수님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

(여기서 복음주의란 성경 말씀을 그대로
진리로 인정하고 복음 외에는 구원이 있
을 수 없다는 신앙노선을 뜻함)

또 교수님이 서양역사를 빠삭하게 아시니

정경채택에 대한 배경도 듣고 싶었고요.

꼭 잊지 말고 답변해주세요 헤헤


00는 방학때 성환형과 독서하기로

했답니다. 성환형이 미국에 가서 영어로

된 책을 자기 키만큼 읽고 온다길래, 저도

걍 한국에서 한글로 된 책을 제 키만

큼만 읽기로 했습니다

또 기회가 되면 중국에 놀러갈려구요

고등학교때 열심히 배운 중국어를 한번

써먹어야죠.

그럼 평안 건강하세요




칼럼지기의 답변


교회 생활을 오래 한 분들과는 주파수를 맞추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가끔 할때가 있지요. ^^

자기 주변에 둥그렇게 선을 그어놓고(복음주의니, 근본주의니...) 그 선 밖으로는 결단코 나가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종종 느끼거든요.

선 밖으로 나가봤자 그곳 역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것이거늘...

(아시다시피 저는 "광야" 취향이랍니다. 그게 무교회신앙의 본령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무교회는 '신학'보다는 단연 '기독교 고전 사상'을 강조합니다.

밀턴, 키에르케고르, 파스칼, 아우구스티누스, 단테, 힐티, 칸트 등... 아우구스티누스를 제외하면 모두 평신도죠?

교회 분들과는 지적 토양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의미에서 무교회는 단지 "교회가 없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제가 답변을 보류한 가장 큰 원인은 00 님의 눈높이에 제대로 맞춰 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였지요.

저는 교회 분들이 거의 또는 전혀 관심없어 하시는 존 밀턴 같은 사상가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고 있거든요.

(제가 쓴 책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를 읽으시면 혹시 제 이야기가 조금은 더 이해가 되실텐데.... 밀턴, 위대한 종교개혁자랍니다. )

그리고 역시 교회 분들은 거의 관심없어 하시는 토머스 칼라일의 사상에 공감하는 바가 크답니다.

칼라일은 계몽주의의 반기독교적 성향에 큰 충격을 받고 젊은날 신경성 위장장애로 크게 고생할 정도로 종교적 고민을 했답니다.

(혹시 이런 고민에 공감을 하시는지요? 제가 번역한 <영웅의 역사>를 역자 서문과 함께 읽으셔도 좋겠군요.)

실은 저 또한 그런 칼라일의 고민에 공감하는 바가 크답니다.

요즘 제 역사읽기 칼럼에도 올라가고 있지만, 칼라일이 마호메트 같은 사람을 영웅으로 보고 그 생애를 조감하고 있지요.

아마 울타리 안에 자신을 지적으로 한정시키는 교회 분들의 입장에선, 이거 종교다원주의 아니냐고 펄펄 뛸지도 모릅니다.

제가 실은 그래서 그 글을 종교 칼럼에 일부러 안 올리고 인문칼럼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런 저런 구구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참 번거롭거든요. 그런 걸 설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압력을 왜 느껴야 하는건지....!!! 종교 칼럼 분위기, 그게 한국 기독교의 분위기이겠지만, 정말 맘에 안듭니다. 역시 저는 광야 취향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두자면, 칼라일은 서양 학계에서 "Calvinist without Theology" 라고 불리우고 있답니다.

누구도 그의 신앙을 의심하지 않지요.

하긴 의심해봤자 뭐하나요? 중세 카톨릭 흉내 내서 종교재판이나 하려구요?

누굴 이단이다 뭐다 해서 사갈시하고 집단의 힘으로 누르려 하는 태도, 그 자체가 가장 카톨릭적인 태도라고 봅니다.

누군가의 사상을 정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카톨릭적, 反기독교적이라는 얘기지요.

이런 얘긴 존 밀턴이 참 많이 했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는 이런 면에서 중세 카톨릭과 너무 닮았다고 봅니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고질병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 권력화 되어 남을 판단하는 태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독교 사상사적인 맥락에서의 논의는, 울타리 안으로 활동 범위를 국한하시는 분들과는 나누기가 참 거북하다는 것을 저는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 내면이 지극히 복잡다단한 것이고, 그것이 인문학의 연구 주제이기도 하건만,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 기독교는 그런 인문학적 기반이 거의 전무하다보니, 일도양단식으로 거두절미하고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판단을 잘 하는 편입니다.

이단인가 아닌가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죠. 내가 아는 얘기면 정통, 못 알아 들으면 이단...

(단순무식... 그거 참 편하긴 합니다. 단군상 목자르는 특공대 조직하고... 끌끌~)

하지만 파스칼이 말했듯이 신앙은 '기하학의 정신'이 아닌, '섬세의 정신'의 영역에 속합니다.

언제 저와 함께 '섬세의 정신'으로 '광야'에서 신앙을 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정경채택"이란 무슨 말인지요?

...

제가 서양 역사를 빠삭하게 안다구요?

천만에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

공부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진답니다.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줍고 있는 어린아이일 뿐이죠.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 서양사 지식이, 기독교사적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무교회의 노선이 가장 올바르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는 된다는 것입니다.

하하하... 답변이 너무 길어졌군요.





파스칼이 말했듯이 신앙은 '기하학의 정신'이 아닌, '섬세의 정신'의 영역에 속합니다. 언제 저와 함께 '섬세의 정신'으로 '광야'에서 신앙을 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