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 선생

김교신전집>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안티고네 2001. 5. 31. 23:53


<김교신전집> 제1권에 실린 글입니다. 원래 <성서조선>는 1936년 9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눈물겨운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글 중간에 일제의 검열 흔적도 엿볼 수 있습니다.



8월 10일 조조(早朝)에 베를린(伯林)으로부터 손군 마라톤 일착(一着)의 전파(電波)가 다다른 순간부터 비등하기 시작한 전조선의 기쁨은 각 신문이 최대의 문자로써 그 공을 상(賞)하며 감사를 정(呈)하고 각종 잡지가 신영웅을 그리고 또 그렸건마는 아직도 다하지 못한 바 있으니 이 감격의 고조도 가연(可然)한 일이다. 올림픽 경기 유래를 아는 이는 마라톤 우승이 곧 그 대회를 정복하는 일인 것을 잘 안다.

“올림픽에서 마라톤에 우승하는 것처럼 화려한 일은 없다. 마라톤에 이기면 올림픽을 정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손군은 정말 행복하다(『오사카마이니치(大阪每日)』-난부 쥬헤이[南部忠平])”라는 대로이다. 이와 같은 일반적 의의의 기쁨과 자랑과 칭찬은 세론(世論)으로써 족하다고 하고 우리는 우리의 특수한 감상 두어 가지만 말하게 하라.

첫째로 손군은 우리 학교의 생도요, 우리도 일찍이 동경-하코네(箱根) 간 역전경주(驛前競走)의 선수여서 마라톤 경주의 고(苦)와 쾌(快)를 체득한 자요, 손군이 작년 11월 3일 동경 메이지 신궁(明治神宮) 코스에서 2시간 26분 41초로써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할 때는

‘선생님 얼굴이 보이도록 자동차를 일정한 거리로 앞서 모시오’

하는 요구에

‘설마 선생 얼굴 보는 일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

하면서도 이 때에 생도는 교사의 심장 속에 녹아 합일되어 버렸다. 육향교(六鄕橋) 절반 지점에서부터 종점까지 차창에 얼굴을 제시하고 응원하는 교사의 쌍협(雙頰, 양쪽 뺨)에는 제지할 줄 모르는 열루(熱淚)가 시야를 흐리게 하니 이는 사제 합일의 화학적 변화에서 발생하는 눈물이었다. 그 결과가 세계 기록이었다. 이런 처지에서 베를린(柏林) 전파를 잡을 때에 남다른 감격이 없지 못하다.

둘째로 올림픽 우승의 감화(感話)로 보도된 바에 의하건대 ‘작전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더라’는 체험을 손군은 고백하였다. “오만은 패망에 앞선다”(잠언 16.18)는 것이 성서의 교훈이요, 하나님이 개인과 민족과 국가와 제왕을 향하여 교육하시는 중대(重大) 교재의 한 과목이다. 전회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아르헨티나(亞國) 자바라(Zabala)군이 방약무인한 행동을 하다가 무참패망(無慘敗亡)하는 광경을 목도한 손군이 ‘승패는 작전과 체력에 있는 것이 아니요, 정신의 겸허함에 있더라’는 진리를 체득하여 전세계에 입증한 것은 큰 일이다.

셋째로 “양정학교의 그 교사(校舍)와 그 운동장이 이런 세계 일등의 선수를 내었다면 우리 조선이 영원한 경주장에서 용자(勇者)의 관(冠)을 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두터워 갑니다”(함석헌 군의 축하장)라는 새로운 희망이다. 세인(世人)은 언필칭(言必稱) 시설이요 환경이다. 마는 선진 제국은 차치하고 조선 안에 어느 고보(高普)가 그 교실이 양정보다 깨끗지 못하며 그 강당과 그 운동장이 양정보다 넓지 못한가(이하 2행략).

넷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마라톤에는 절대(絶大)한 체력을 요한다. 그러면 조선인보다 체력이 우월한 민족이 없던가. 있다. 유한한 근력을 최대 효과로 분배 사용함에는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면 과학적 연구에 우리보다 나은 나라가 없는가. 있다.

마라톤에도 무엇보다도 인내력이 제일이다. 그러나 조선인이 인내력으로 세계일(世界一)이라는 것은 세계 열강이 불승인하는 바이다. 그러면 어째 손기정(孫基禎) 군에게 우승의 영예가 돌아왔나. 식자에게는 일대 의문이다. 때에 공중에 소리 있어 가로되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저의 심사(心思)에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높은 것을 낮추시고 낮은 것을 높이시며, 강한 자를 꺾으시고 약한 자를 세우시느니라”(누가 1.51-53)고.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시다. 손군의 우승은 우리에게 심술궂은 여호와 신의 현존을 설교하여 마지않는다. (1936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