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의 대화] 이찬부 님과 조현수 목사님.
박상익 교수님께, 그리고 조현수 목사님. (이찬부 님의 글)
<성서연구>지에서 뵙다가 이제 인터넷에서 뵙게 되는군요. <성경연구>의 소개로 인터넷에 들어가 이제 자주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학교 줄이 짧고 컴맹인지라 많이 이용은 못하지만 그래도 유익이 많습니다. 역시 무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주의임을 새삼 느낍니다. 교수님의 인터넷 상 활동을 많이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조현수 목사님 <김교신 전집> 7권 구한다 하셨는데 저한테 있습니다. 거의 새 책 상태입니다. 이에 상응하는 전집을 주시고 가져가십시오. 저는 40중반의 노동 직업에 학교 줄이 짧아 전집 정독이 사실 힘듭니다. 책은 필요한 자에게 그 가치가 있습니다.
책 욕심이 많아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으나 실상은 정독이 잘 안 되는군요. 그러나 책만이 제 정신을 맑게 해주고 있습니다. 컴맹이라 고등학교 자식놈이 대신 타이핑하고 있습니다.
이찬부 님, 반갑습니다. (박상익의 답장)
보잘것없는 저의 칼럼에서 도움을 얻는다고 말씀해주시니 정말 저로서는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이 칼럼을 운영하면서 우려되는 것은, 저의 직업이 교수이다 보니 이 칼럼도 주로 가방 끈 긴 사람만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고, 또 그것이 마치 무교회 신앙의 본질인 양 비쳐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교회 신앙은 실제로는 그 스펙트럼이 대단히 다양합니다. 엊그제 황연하 님께서 제 칼럼 독자 한마디에 올리신 글(영어로 올리셨죠.)에서 언급한 송두용 선생님의 경우, 일생을 서울 오류동에서 그야말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빈민 구제 활동에 매진하셨습니다. 거지나 문둥병자가 찾아오면 먹여주고 재워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 때문에 그 자녀 되는 분들께서 아버지를 크게 원망하셨지요.)
그리고 제게 신앙을 가르쳐 주신 노평구 선생님의 경우, 제가 노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절감한 것은, 노 선생님처럼 대인관계의 폭이 넓으신 분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국무총리, 장관, 대학교수, 파출부, 청소부, ... 심지어 비구니 스님에 이르기까지...
만일 제가 이 칼럼에서 알량한 배운 티를 내고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저의 인격의 깊이와 폭이 그것밖에 못되기 때문입니다. 행여 그것이 무교회 신앙인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간주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무교회 신앙은 실로 광대무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일면만을 보여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부족하나마 제가 할 수 있는 능력과 시간 범위 내에서 이 시대의 새로운 미디어(매체)인 인터넷을 빌어 코이노니아의 자리를 만들어보고자 할 뿐입니다. 그리고 무교회 신앙에 대해 모르고 계신 분들에게 진실을 조금이나마 알려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무교회 신앙 운동도 김교신, 송두용 선생님(1세대), 그리고 노평구 선생님(2세대) 시대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이제 그 분들의 시대가 저물면서 <영웅의 시대>도 가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교회의 1세대와 2세대는 실로 철저히 신앙을 위해 공적인 삶을 사셨고, 이를 위해 자신들의 가정마저도 희생시켜가면서 살아오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 기독교의 순수 신앙 전통을 살려내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국 무교회는 제3세대가 떠맡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세대들은 자기 직업을 가지고, 가정도 꾸려나가면서 능력 한도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기왕에 갖게 된 직업이 학문인 만큼 저는 그 학문을 통해 신앙 생활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8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습니다만 앞으로 3, 40권의 저서, 역서를 더 쓸 생각입니다. 가능한 한 한국 사회에 기독교 신앙의 폭과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책을 쓰거나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또 한가지 더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저의 신앙과 사상의 능력 한도 내에서 글을 쓰는 것이지만, 가능한 한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글을 쓰겠다는 것입니다. (저서든 번역서든 말입니다.) 요즘 나오는 우리말 책들 중에 외국어로 쓴 책보다 더 어렵게 쓴 책이 꽤 많거든요.
<김교신전집>은 1930년대 전후에 쓰여진 글이기에 현대인이 읽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아마 이번에 새로이 편집이 되면 한자도 괄호 안에 넣고, 어려운 말은 조금 풀어서 쓸 것 같습니다. 물론 김교신 선생의 글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자료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풀어쓰기만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조현수 목사님, 원하신다면 이찬부 님 말씀대로 연락을 취하셔서 <김교신전집>을 인수 받으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이찬부 님은 명년쯤 새로운 전집이 나오면 그것으로 읽으시면 될 테니까 말입니다.
이찬부 님의 글을 접하고 제 칼럼이 반드시 먹물들만의 지적 유희에 머문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얻게 됩니다. 저도 다양한 직분을 갖고 계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칼럼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찬부 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