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어린 아기와 조선 사람

안티고네 2000. 8. 11. 09:23

요사이는 누워서 돌 지난 어린 아기 보는 것이 여름날 소일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심리학적 관찰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페스탈로치의 교육학적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니니, 사실 그저 아기 보기일 뿐이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는 삼복 더위에도 물러나지 않는 한가지 생각이 자리잡고 있으니, 부족하나마 조선에 대한 생각이다. 우연히도 어린 아기와 조선 사람, 둘 사이에 나는 너무도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고, 반만년 역사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이 자라목같이 쏙 들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첫째, 어린 아기는 참을성이 없다. 누웠는가 하면 서고, 앉았는가 하면 배를 타고 넘고, 발 밑에 갔는가 하면 어느 틈에 창에 기대고, 바로 조선인이 사상에서 사상으로 정당에서 정당으로 쉬파리 날 듯 날아가는 것과 흡사하다.

어제까지 목사였는가 하면 오늘은 정치꾼, 교단에서 고무신 장사로, 관리가 죄수로, 심지어 결혼까지도 매음이 되고 말았다. 맹휴니 파업이니 하는 모든 것도, 잠시를 공부 못하고 집중 못하는 어린 아기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리하여 '반만년 역사'를 주문같이 외우되, 참다운 민족 정신의 침전도, 보편성을 띠는 독창적인 문화의 꽃도, 사상의 탑도 없다. 그렇다, 사실 어린 아기가 배설한 것을 집어먹듯이, 오직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이 민족의 유일한 생활 목표이다.

그러므로 살인하여 먹든지, 사기 쳐서 먹든지, 도무지 관계할 것이 없다. 그저 먹으면 그만이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반만년 역사에서 그들이 발견한 철학의 전부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안타깝게도 먹는 것조차 해결치 못했고, 그들이 자랑하는 반만년 역사란 대부분이 노예의 역사에 불과하다. 먹는 것 자체를 인생의 목적, 이상, 사명으로 하는, 인생의 의미와 존엄성을 모독하는 자는, 개인이건 민족이건 먹고 살 생존의 권리가 우주적, 보편적 도덕률에 의해 박탈되기 때문이다.

굶어죽더라도 직분과 책임과 천직에 대한 충실, 근면, 정직 등 도덕적 자각과 책임을 사수하는 정신이 없는 한 영원히 경제적 충족도 없을 것이다.

그밖에 이기심, 시기심, 당파근성, 의뢰심, 무지, 모방, 부화뇌동, 질투, 완력, 불결 등 모두가 반성과 자각과 분별과 이성으로 처신하는 어른의 행동이 아니다.

어린 아기가 귀여운 이유는 그것이 가능성과 희망의 존재인 데 있다. 그러나 조선의 현상은, 내 애국심이 부족한 탓인지, 희망보다는 노망, 아니면 불치의 불구나 기형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명 없는 반만년의 민족 수명이란 부질없는 것이다.

이 백성이 대체 민족의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가. 만일 노년이라면 쇠망의 앞날밖에 없을 것이다. 민족 생명도 개인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결코 무한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빌로니아도, 이집트도, 앗시리아도, 페니키아도, 페르시아도, 그리스, 로마도 다 사라졌다. 사명을 다하고, 또는 사명을 다 못한 탓으로...

"사람은 사명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고 한 리빙스턴의 말이 과연 진리라면, 우리 민족의 장래와 희망도 오직 민족 사명의 자각에만 있다는 것을 단언하여 둔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이른바 애국적 언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족에게 주어진 사명은, 우주의 창조자, 역사의 섭리자이자 완성자인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관의 확립, 즉 종교적 자각 이외에서는 올 수 없음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