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두려움의 원인
안티고네
2002. 5. 17. 10:04
이번 3.15 정부통령 선거에서 집권당인 자유당이 3인조 선거, 9인조 선거 등 악랄한 계책과
방법을 써서 대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불법, 불의, 죄악으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일개 불실한
그리스도인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견딜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자유당이나 경찰은 말할 것도 없으나, 무엇보다도 국민 자체의 불법과 죄악을 책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와 같이 아직도 동양적인 전제주의와 봉건제도와 관료주의를 지양 못한 사회에서 집권자들이 정권욕에 눈이 뒤집힌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체 국민은 무엇이 무서워서, 그리고 무슨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의 생명선인 비밀투표의 권리마저 포기하고 자유당이나 경찰이 강요하는 3인조, 9인조에 가담하여 양심을 거스르는 불법한 투표권을 행사했단 말인가.
깡패나 순경이 무서워서 따라갔다고 하는 것도 어린아이 아닌 성인으로서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조선 시대라면 몰라도, 3인조 선거, 9인조 선거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언필칭 법치국가에서 죄가 되는 것도 아니려니와, 하물며 사람을 죽일 수도 없는 일이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응하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다. 물론 무슨 가해나 고난을 예상 못할 바는 아니나, 사람인 이상 공공연한 불의에 대해 응당 자기주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다소의 어려움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자각의 문제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남이 똥이라도 먹으라면 그저 먹는 식으로만 살 것인가.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일반 민중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소위 자각적이어야 할 지식층도 마찬가지였다. 지식인 전체를 대변하는 의사 표시 하나 없지 않았는가. 양심과 도덕과 죄악에 직접 관여한다는 기독교계의 태도는 더욱 비루했다. 칼보다 강하다는 펜을 쥔 문학자나 사상가들 역시 공적인 비판이 없었다. 반대의 견해가 있다면 그것은 공공연히 표명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이번 불법 선거에 국민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그 백성에 그 정치’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 이 가인과 에서의 족속이여!
결론적으로 말하여 집권자들의 불법, 불의가 그들의 탐욕에 기인한 것이라면, 민중의 비양심적인 불법에의 추종 역시 소극적인 자기 안일을 구하는 공포심에 기인한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사람에게 공포심이란 의식 무의식 간에 전적으로 저의 비양심적인 생활태도에 기인하는 심리상태임을 지적해두는 바이다.
<진리와 독립> 제4호 (1960년 4월)
하지만 나는 자유당이나 경찰은 말할 것도 없으나, 무엇보다도 국민 자체의 불법과 죄악을 책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와 같이 아직도 동양적인 전제주의와 봉건제도와 관료주의를 지양 못한 사회에서 집권자들이 정권욕에 눈이 뒤집힌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체 국민은 무엇이 무서워서, 그리고 무슨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의 생명선인 비밀투표의 권리마저 포기하고 자유당이나 경찰이 강요하는 3인조, 9인조에 가담하여 양심을 거스르는 불법한 투표권을 행사했단 말인가.
깡패나 순경이 무서워서 따라갔다고 하는 것도 어린아이 아닌 성인으로서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조선 시대라면 몰라도, 3인조 선거, 9인조 선거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언필칭 법치국가에서 죄가 되는 것도 아니려니와, 하물며 사람을 죽일 수도 없는 일이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응하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다. 물론 무슨 가해나 고난을 예상 못할 바는 아니나, 사람인 이상 공공연한 불의에 대해 응당 자기주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다소의 어려움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자각의 문제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남이 똥이라도 먹으라면 그저 먹는 식으로만 살 것인가.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일반 민중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소위 자각적이어야 할 지식층도 마찬가지였다. 지식인 전체를 대변하는 의사 표시 하나 없지 않았는가. 양심과 도덕과 죄악에 직접 관여한다는 기독교계의 태도는 더욱 비루했다. 칼보다 강하다는 펜을 쥔 문학자나 사상가들 역시 공적인 비판이 없었다. 반대의 견해가 있다면 그것은 공공연히 표명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이번 불법 선거에 국민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그 백성에 그 정치’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 이 가인과 에서의 족속이여!
결론적으로 말하여 집권자들의 불법, 불의가 그들의 탐욕에 기인한 것이라면, 민중의 비양심적인 불법에의 추종 역시 소극적인 자기 안일을 구하는 공포심에 기인한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사람에게 공포심이란 의식 무의식 간에 전적으로 저의 비양심적인 생활태도에 기인하는 심리상태임을 지적해두는 바이다.
<진리와 독립> 제4호 (196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