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번역

‘歷史’라는 말의 기원에 관하여

안티고네 2023. 1. 1. 12:04
 
작고한 서양사학자 이영석 교수의 글. ‘歷史’라는 번역어가 정착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본 지식인이 오랜 세월 연구하고 토론했는지 알 수 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어가 아니라는 말. 이걸 AI가 해줄 수 있다고? 순진한 발상이다. 인문학은 만만한 학문이 아니다. 바둑 따위와 비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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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라는 말의 기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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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한자문화권에서 史라는 표현은 사용되었지만, 歷史라는 成語는 낯설다. 아무래도 근대 개념어 또는 번역어가 아닐까 싶다. 이 문제라면 19세기 중엽 일본 지식인들의 노력과 활동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지식인들은 平安時代 이래 한문을 일본어 어순에 맞춰 이해하는 훈독의 방법을 확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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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과 메이지 초기에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훈독의 방법을 영문 이해에 적용한다. 그들은 영문 단어(특히 개념어와 근대 학술어)를 한자로 옮기는 어려운 작업에 전념했는데, 특히 영어의 근대 개념어를 두 개의 한자로 이루어진 숙어로 치환하는 데 몰두했다. 이 작업의 선구자들이 니시 아마네(西周, 1829-97)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모리 아리노리(森有札), 니시무라 시게키(西村茂樹) 등이다. 이들은 메이로쿠샤(明六社)를 세워 이 운동을 계속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니시 아마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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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哲學, 主觀, 客觀, 理性, 歸納, 演繹, 藝術, 文學, 心理, 科學, 技術, 權利, 義務 등의 근대개념어를 번역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자신이 서양의 근대 개념어는 일본인에게 익숙한 한자의 二字成語로 번역해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이후 일본식 한자 성어가 19세기 후반 중국이나 조선에서 건너간 일본유학생들을 통해 같은 한자문화권에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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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확인한 바로는, ‘歷史’라는 말은 메이지 6년(1873) 영어 history의 역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이 말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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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라는 말은 중국 明代 袁黃의 <歷史綱鑑補>(1606)의 제목으로도 등장한다. 일본 江戶時代에도 ‘歷史’라는 말이 가끔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 말의 의미는 지금과 달랐다. 그 말은 글자 그대로 ‘歷代의 史’를 뜻했다, 즉 <史記>, <漢書> 등 이전 중국 역사서의 총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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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지식인들은 왜 歷史라는 말을 썼을까. 중국 歷代의 正史를 독파해야 설득력을 갖는다. 과거의 경험에서 설득의 논리를 찾는 것이다. 당시 권위의 요체는 중국고전의 인용이었다. 특히 국가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삶을 다루는 正史야말로 그 중요한 전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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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歷代의 史書’를 뜻하는 歷史가 영어 ‘history’의 譯語로 굳어졌을까?일반적으로 영어 ‘history'는 과거에 일어난 것과 과거에 관한 서술 또는 탐구라고 하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 뒤의 의미는 과거에 일어난 것을 사료나 기록 등을 통해 탐사하는 지적 행위, 즉 역사연구 또는 역사학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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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72년사이에 일본 지식인들은 history의 역어로 다양한 표현을 썼다. 歷史 외에도 단순히 記錄, 史記, 史書, 來歷, 由來, 古事, 緣起 등의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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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吉田庸德의 <袖珍英和節用集>(1871) 이후 history의 역어로 '歷史'가 정착된다. 1872년 소학교, 중학교, 법학교, 외국어학교에 史學이라는 교과목이 개설되었고 이후 그 명칭이 歷史로 바뀌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歷史라는 표현이 널리 퍼졌고,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지식인들 또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 개념어에 익숙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