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청'의 운영방법
페친 한분께서 '번역청'의 운영방법과 번역물의 질 저하에 대해 걱정하는 심정으로 질문을 주셨기에 이렇게 답을 드렸습니다.
------------------------
'번역청'은 상징적인 용어일 뿐입니다. 검색해보시면 알겠지만 1967년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에서 '번역청' 필요성을 기사화 했더라구요. 그래서 언어의 경제성 때문에 그 칭호를 가져다 쓴 거구요. 지금 한국연구재단에서 동서양명저번역지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년에 20억 미만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지요. 전문 연구자들 신청을 받아 심사 후 지원금을 작업 단계별로 지급합니다. 저도 이 지원금으로 칼라일의 '영웅숭배론'(2003, 한길사), '의상철학'(2008, 한길사)을 번역했습니다.
이 번역지원 제도를 준용해서 지원금을 대대적으로 확충해서 시행한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번역청이건, 번역위원회건 호칭은 부차적입니다. 예산 규모가 문제지요. 1년 국가 예산이 강남 아파트 한채값도 못된다는건 정말 말이 안 되지요.
(그나마 9억이던 예산을, 2018년초 '번역청을 설립하라' 청와대 국민청원 넣고 언론에 여기저기 기사가 나오니, 2019년에 18억으로 증액하더군요. 늘어난게 고작 이 정도입니다. 당시 저를 만나러 연구재단 직원 2명을 거느리고 대전까지 출장나온 교육부 사무관은, 대외비니 언론에 공개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이번 국민청원 덕분에 번역예산이 연 70억으로 증액될 예정이라고 귀띰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결국 기재부 문턱을 넘지 못하고 18억으로 주저앉은 거죠. 교육부가 암만 예산 올려도 기재부가 노!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번역의 질 문제와 전문성을 언급하셨는데, 저도 공감합니다. 인문학(및 기초 학문)이 말라죽어가는 상황인지라, 젊은 연구자들 가운데 실력있는 번역자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연구재단 번역 지원을 받는 번역물도 점점 질이 떨어진다는 말이 들립니다. 앞으로도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되면 되었지 좋아질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큰일이죠. 조만간 제아무리 거금을 쏟아부어도 마땅한 번역자를 구할 수 없는 시대가 올겁니다. (아니, 이미 왔다고 봐야죠?) 이 힘든 작업을, 먹고살 수도 없는 번역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제가 이런 글 포스팅하는 것도 무슨 희망이 보여서라기보다는, 개탄하는 심정으로 푸념을 늘어놓는 겁니다. 이번 문체부장관 뽑아놓은 꼴을 봐도 아시겠지만, 대통령을 비롯, 정책결정자들에게 '문화'에 대한 비전이 아예 없습니다. 이게 국짐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똑같습니다.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국 사회의 한계라고 판단합니다. 중장기 비전도, 소프트파워에 대한 인식도 없이 그저 당장 돈이 되고 표가 되는 것에만 매달리는 풍토죠. 민주당 586 정치인들도 '정무'에는 능하지만 '정책'에는 젬병인것 같습니다. 그들이 자라온 성장 배경에 인문학이니 문화니 하는건 끼어들 여지가 없었거든요. 그러니 더 나아지리란 기대조차 할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