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배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안티고네 2020. 7. 7. 22:00

“6·25전쟁 나기 전에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맹장염에 걸려 할아버지를 찾았는데 하필 일요일이라 교회 예배 중이었다. 시간을 화급하게 다투는 수술이라 결국 김일성 주석은 고문단으로 평양에 나와 있던 소련군 군의관에게 수술을 받았다. 수술 도중 할아버지가 들어가 참관하셨는데 하도 많이 절제를 하는 걸 보고 김일성 주석에게 ‘소련 의사는 기술이 좋을 줄 알았는데 나 같으면 저렇게 수술 안 한다’고 한마디 해줬다고 하시더라.”

 

장기려는 눈을 감던 1995년까지 이산의 한을 풀지 못했고 정보기관의 감시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1970년대 우리 집으로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에 있는 작은아버지(장기려의 셋째 아들)라고 했다. 전화를 받고 고민하다가 경찰에 신고했더니 대문 밖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정보부 사람들이 밀고 들어왔다. 온 가족이 섬뜩했다. 정보부가 이미 다 알고 가족을 시험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장기려 가족을 상시 감시했다. 북한의 납치에 대비한 보호 명목이었다. “정부는 특히 일본에 못 나가게 했다. 다른 나라에도 아버지하고 할아버지하고 같이는 못 가게 막았다. 부자가 동시에 납치되면 골치 아파진다고.”

 

북한은 장기려 송환에 사력을 다했다고 한다. 아내와 남은 자식들이 북한 방송에 나와 송환을 호소하기도 했다. “근데 더 웃긴 건 그렇게 하고 난 뒤에 고모에게서 편지가 왔다. 방송에서 떠든 것은 우리 뜻이 아니다. 우리도 시켜서 한 거니 남쪽 가족들이 이것 때문에 문제가 안 생겼으면 좋겠다. 오해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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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를 떠올리는 이유 - 시사IN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의료보험제도의 효시는 1968년 설립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이다.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 ‘한국의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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