쥔장 서평

29. 호기심과 예찬 <예찬>

안티고네 2019. 2. 22. 16:56

호기심과 예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예찬>(현대문학, 2000)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1924~2016)의 산문집이다. 작가는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인 열정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겪는 모든 경험이 심드렁해지고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게 된다면, 스무 살 나이라도 그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니다. 존재와 사물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예찬할 때 삶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하찮아 보이는 일상을 호기심으로 대하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1. 작가는 25년 전 집 뜰에 전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이제 그 나무들은 한 15미터 정도의 크기로 자랐고, 아래쪽 가지들이 서로 닿을 정도다. 그런데 좀 떨어져서 살펴보면 두 나무가 똑바로 자라는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둘 사이의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에게서 떨어지고 싶다는 듯 반대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자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각각의 나무가 다른 나무에 대해 혐오감의 전파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작가는 묘목업자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는 나무는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거의 무한대의 공간을 주위에 확보해 딱 한 그루만 따로 심어놓았을 때만 멋지게 자란다고 대답해 준다. 작가는 옳거니 하고 깨우친다. 나무들은 서로를 증오한다. 나무는 개인주의적이다. 작가는 밀림이 뿜어내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숲이야말로 집단수용소의 혼잡 그 자체인 것이다. 밀집해 자라는 나무들은 서로를 미워한다. 숲속의 공기는 식물적 증오로 가득 차 있다.


투르니에의 글을 읽으면서, 전북대 교수인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의 글이 생각난다. 강 교수는 전주에 살다가 일 때문에 서울, 특히 강남엘 가면 사람들에게서 독기가 풍긴다고 했다. 좁은 면적에 인구가 밀집해 살다보니 인상이 독해 보인다는 것이다. 강남 사람들이 모르는, 외부인의 눈에만 보이는 현상일 것이다. 사람이건 나무건 밀도가 높아지면 서로를 증오하게 된다니!


2. 한국인에게 동해, 서해, 남해가 있다면, 프랑스인에게는 지중해와 대서양이 있다. 투르니에는 지중해에서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한다. 밀물과 썰물이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지중해를 진정한 바다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프랑스) 남쪽에는 그랑 블루(거대한 푸른 빛)가 있고, 서쪽에는 대양이 있다. 그 둘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날마다 반복되는 대양의 썰물과 밀물이다.”


작가는 대서양을 선호한다.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한사코 대양 쪽을 택하는 편이다. 내겐 조수가 있어야 한다. 나는 썰물이 필요하다.” 작가에겐 밀물 썰물이 있는 대서양이야말로 진정한 바다인 것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이라는 두 바다를 끼고 사는 프랑스인의 시각이 낯설다. 그들의 시각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3. 투르니에는 18세기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저술가인 생시몽(1675~1755)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생시몽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가문이 최근에 와서야 얻게 된 행운의 내력을 아주 자랑스럽게 술회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클로드는 루이 13세를 모시는 시종으로, 왕이 사냥을 갈 때 수행하는 관리였다. 왕이 타는 말이 지쳐서 다른 말로 바꿀 때가 오면, 원기 있는 새 말을 대령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왕은 성격이 급해서 말을 재빨리 바꿔 타기를 원했다.


말을 갈아탈 때마다 왕이 성급해하는 것을 본 생시몽의 아버지는 궁리 끝에 왕이 버리는 말의 궁둥이에 새로 대령하는 말의 머리를 갖다 댔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기 왕성한 왕은 땅에 발을 밟지 않고도 이 말에서 저 말로 몸을 날려 한 순간에 옮겨 탈 수 있었다. 그러자 왕은 젊은 클로드 드 생 시몽을 왕실 마구간 최고책임자로 임명했다.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 왕의 총애를 얻어 출세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투르니에는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시몽이 들려주는 말 이야기는 20세기중반까지 존속하다가 최근에 종언을 고한 하나의 문명 속에서 말이 차지했던 각별한 지위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 기계화부대로 명성이 높았던 나치 국방군이 러시아를 침공할 때 말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신병교육대에서 화기 교육을 할 때 인마(人馬)살상용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지 않은가. 비교적 최근까지 전투에서 말의 용도가 그만큼 광범했음을 알려준다.


투르니에는 말에 대한 자신의 추억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에 따르면 말은 동물들 가운데서 가장 인간적이고 심지어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거대하면서도 단단하다는 이중의 자질을 가진 엉덩이 때문이다. 도심의 거리나 도로상에서 말이 사고를 당하게 되면, 즉 말이 넘어져 상처를 입거나, 또는 주인에게 얻어맞는 경우, 오늘날의 자동차 사고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보는 이의 마음은 충격을 받는다. “188913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알베르토 광장에서 삯마차를 끄는 말이 그의 마부에게 매를 맞는 광경을 목격한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달려가서 말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투르니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어린아이의 말에 대한 사랑은 그 거대하고 따뜻하고 근육이 발달한, 그리고 땀 냄새와 똥 냄새가 구수한, 몸뚱이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시작된다. 그 위에 올라타고 뺨에서 발가락까지 전신을 착 붙이고 있어보면 여간 관능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안장 없이 탈 때의 이야기다. 어린아이는 가능한 한 벌거벗은 맨몸이어야 좋다. 그의 몸과 말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면 안 되니까 말이다.”


그는 말의 등자(鐙子)가 서양 세계에 10세기경에야 비로소 등장했다고 신기해한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등자는 삼국시대에도 있었던 것이지만, 유럽에서는 중세에 처음 도입되었다. 투르니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렇게도 간단한 개량 장치를 고안하기까지 어째서 수 천 년을 기다려야 했는지를 누군들 설명할 수 있으랴.”


4. 작가는 오랜 여자 친구에게 들었다면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여학생 기숙학교 이야기도 들려준다(알다시피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다). 그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아홉 살 때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어느 날 목욕실을 이용했는데, 옷을 벗고 몸을 씻고 몸의 물기를 닦고 다시 옷을 입을 때는 언제나 소매 없는 망토를 덮어쓰고 그 속에서 해야 한다는 규칙을 깜빡 잊었다. 그러자 감독 수녀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고 한다. “이 한심한 애야! 넌 너의 수호천사가 젊은 남자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수호천사가 늘 지켜보고 있으니만큼 여학생들은 목욕할 때도 망토를 입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5. 작가는 자잘한 일상에서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기이함에 감동하고 예찬한다. 한편,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독자는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과 유머 감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음미하면서, 그의 따뜻한 감성을 예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