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번역

문화계에는 있고, 우리네 학계에는 없는 것

안티고네 2011. 4. 30. 23:19

문화계에는 있고, 우리네 학계에는 없는 것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2011년 04월 25일 (월) 13:27:32 박정수 한양대·정치학 editor@kyosu.net

   
  박정수 한양대·정치학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인터넷이 시끄럽다. 한국 최고의 호텔 중 하나라는 신라호텔의 한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착용한 사람을 입장 금지시켰다는 기사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술자리에서도 이 사건은 중요한 가십거리가 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모두들 비분강개해 보지만, 막상 뒤돌아서서 생각하니 무척이나 겸연쩍다. 우리네 대학에서 우리네 학위가 천대 받고, 대학 강단에서 우리말 강의가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고, SCIㆍSSCI급 논문들의 우대 속에서 한글논문이 배척되고 있는 우리네 학계의 모습을 못내 잊고 있었다. 국문학 논문들도 영어로 써야만 대우받는 시대가 머지않아 다가올 것 같은데, 감히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글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데, 이 사건을 접하다 보니 문득 한국 문화계에는 있지만 한국 학계에는 없는 것이 하나 더 생각이 나서 서두에 적었다. 한국 문화계에는 있지만 우리네 학계에는 없는 것 하나 더, 그것은‘자존심’인 듯하다.

 

서두부터 삼천포로 빠졌는데, 본 주제로 얼른 들어가야겠다. 나는 정치학으로 학위를 받았지만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중국문화와 문화산업을 연구하러 중국에 갔을 때다. 우연한 기회에 베이징영화대학에서 1년간의 아카데미 과정으로 연출공부를 하게 됐다. 막상 시작은 했지만, 중국어도 안 되고 거기다 영화의‘영’자도 모르는 사람이 연출이라는 이 생소한 과목을 공부하자니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무모했다. 거기다 첫 학기부터 단편영화를 과제로 제출해야한다는 것이다. 강의가 시작되고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부터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짜는 일들이 단계별로 과제로 제시됐다. 엄두가 나질 않아 출석에만 의의를 두고 있었는데, 문제는 동기들이었다.

 

중국인 친구들이 자꾸 시나리오 내용을 묻는 것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언제 촬영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 매일, 쉬는 시간마다, 만나는 동기들마다. 영화가 발전한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무엇을 찍을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나 보다. 차마 못 만들겠다는 말은 못하고,‘ 아직’이라는 말로 그렇게 대충 두어 주를 넘기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대뜸 그러는 거다. 네가 중국어가 안 되서 그러는가 보다고. 그러면서 대충이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만들어 와 보란다.

 

거기서부터 말리기 시작했다. 친구의 고마운 말에 마냥 사양할 수만은 없어서 대충 이야기 하나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내 이야기를 시나리오 형식으로 예쁘게 만들어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정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감독이 돼 가고 있었다. 내 시나리오를 보고 촬영을 도와주겠다는 중국인 동기가 어떻게 찍을 것인지 나보고 장면을 설명해 달란다. 아무 생각 없이 說을 풀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며칠이 지나서 콘티를 짜오는 것이다. 이후에도 내 시나리오와 콘티를 보고 조명을 아는 친구는 조명을, 음악을 아는 친구는 음악을, 연기를 전공한 친구는 연기를 도와줬다. 촬영장소도, 내 손을 잡고 베이징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섭외해 줬다. 그렇게 해서 5분짜리 내 처음이자 유일한 영화는 급기야 완성되고야 말았다. 물론 편집도 친구들이 도와줬다.

 

그때 알았다. 영화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전까지 나는, 영화란 감독이 모든 것을 알고 일일이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두가 나질 않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나리오도, 콘티도, 촬영도, 음악도, 편집도, 하다못해 미술도 각각 그 분야에서는 감독보다 뛰어난 전문가들이 모여서 하는 공동 작업이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서 하나의 음색을 내듯이 영화라는 것도 그랬다.

 

문화계에는 있지만 우리네 학계에는 없는 것, 혹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문화계는 그 자존심 강하고, 고집스런 다양한 문화영역-문학, 연출, 음악, 촬영, 미술, 무용, 연기, 조명 등-들이 함께 모여서 영화라는 또 다른 종합예술을 만들어 내는데 우리네 학계는 그게 없다. 지금까지 학계는 많은 경우 자신들의 세분화된 분야 속에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높였다. 넘어가는 것도 넘어오는 것도 쉽지 않으니 같이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마치 오랜 가뭄 끝에 드러난 논바닥 같다고나 할까.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분명 혼자 할 수 없는 것도 있을 텐데. 아니, 함께 한다면 개별적 학문영역에서는 또는 개별적 연구자들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가슴 벅찬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텐데.

 

우리 학계도 개별적 연구가 만나서 집단적 연구를 이루고, 그것이 다시 개별적 연구로 분화되는 자연적이고 유기적 선순환이 이뤄질 수는 없을까. 학문하는 길은 늘 외롭고 고독하다고만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으면 싶다. 혹 그것이 우리네 학계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었으면 더욱 좋고.


박정수 한양대·정치학
한양대에서 박사를 했다. 사회과학한국(SSK) 전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국제정치·경제, 정치와 문화, 문화산업 등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