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읽기

일본 대지진 이후 '패배감' 느끼는 미국, 왜?

안티고네 2011. 3. 28. 22:38

일본 대지진 이후 '패배감' 느끼는 미국, 왜?

 

입력 : 2011.03.28 11:56 / 수정 : 2011.03.28 17:49

조선일보 DB

3·11 대지진 이후 일본제 핵심 부품을 공급받지 못한 미국 제조업체들이 잇달아 공장 가동 중단 위기를 맞으면서, ‘미국이 경제전쟁에서 일본을 누르고 승리했다’는 믿음도 깨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980년대 일본과의 무역협상에서 선봉장을 맡았던 클라이드 프레스토비츠 미 경제전략연구소(ESI) 소장은 25일 발행된 뉴스위크 일본어판에 쓴 기고문에서 “그동안 미국인들은 일본제 부품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없어졌다고 믿어왔지만, 이번 지진으로 그런 믿음이 신화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지진 이후 가동중단 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주요 제조업체들을 나열했다.

기고문에 따르면, 볼보는 지난주 “내비게이션과 에어컨의 재고가 10일분밖에 남지 않아 공장이 조업을 정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주 시보레 콜로라도나 픽업트럭인 ‘GMC 캐년’을 조립하는 루이지애나주 시리브포트의 종업원수 923명의 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제 부품 부족이 원인이다.

아칸소주 마리온에서는 픽업트럭인 탄드라 등 도요타 차의 뒷면 차축을 만드는 히노자동차의 제조공장이 기어(gear) 등 일본제 핵심 부품 수입 급감으로 조업정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동차 산업뿐만이 아니다. 클라이드는 “반도체를 제조하는 설비 대부분이 일본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다”며 사례를 소개했다. 반도체의 회로를 새기는 스텝퍼는 3분의 2가 니콘이나 캐논제이며, 휴대폰 노트북PC에 사용되는 수지 ‘BT레진’의 약 90%와 전 세계 컴퓨터칩에 사용되는 실리콘 웨이퍼의 60%가 일제라는 것.

그는 또 일본의 혼란이 길어지면, 애플이나 휴렛팩커드(HP) 역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제품, 예를 들면 소형 마이크나 도금 소재, 고성능 기계, 전자 디스플레이, 거기에 골프 클럽이나 보잉의 신형 여객기 ‘드림라이너’의 날개에 사용되는 탄소섬유 등이 ‘모두’ 또는 ‘대부분’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클라이드는 이어 “이번 같은 재해가 미국에 왔더라면, 전 세계가 이처럼 곤란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북미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미국제 부품이 부족해 조업정지의 위기를 맞을 곳이 몇 개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실리콘밸리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서 애플은 얼마나의 위기에 직면할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서비스와 하이테크 경제의 나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이테크 무역 수지 역시 1000억달러 이상 적자”라며 “진실을 말하자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미국 제품이란 거의 없다”고 썼다.

그는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보내는 동안 미국은 인플레이션 없는 고성장을 누리며 일본에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미국에서도 최근 IT 버블과 서브프라임 버블이 붕괴하면서 역시 ‘겉만 번지르르한’ 고성장을 해왔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1990년대 글로벌 경쟁의 진짜 승자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