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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개신교의 시대착오, 종교개혁 전야 떠올려

안티고네 2008. 9. 7. 12:57

개신교의 시대착오, 종교개혁 전야 떠올려

박상익 교수 우석대학교 | 제78호 | 20080907 입력
 
 
“예전에는 예수쟁이라고 하면 싫어하면서도 그 신실성은 믿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금융거래에서도 목사·장로·교인이라고 하면 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든다고 합니다. 사회적인 신뢰, 도덕적인 신뢰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월간 ‘기독교사상’ 서진한 편집인의 말이다. 명색 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종교 없는 일반인보다 훨씬 낮은 도덕적 평가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빛과 소금이기는커녕 도덕파탄자로 지탄받는 한심한 모습이다.

개신교는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고 말았을까? 기독교문명의 본류인 서양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저항한 프로테스탄티즘의 등장으로 근대가 밝아오면서 서양 사회는 종교적으로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역사학자들은 그 대표적 현상 가운데 하나로 중세 ‘종교 문화’에서 근대 ‘종교 신앙’으로의 전환을 꼽는다.

종교 문화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고가 종교적 틀 안에서 전개되는 문화를 말한다. 중세에는 세례성사와 종부성사가 출생신고와 사망신고를 대신하는 등 삶의 모든 영역이 종교의 이름으로 영위되었다. 이러한 종교 문화는 종교개혁 이후로도 한동안 이어졌다. 예컨대 근대 초기의 왕권신수설은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 군주들도 즐겨 써먹던 정치이론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세속화 과정을 거치면서 종교 문화는 종교 신앙으로 전환되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이었다. 중세 종교는 일종의 정신적 습관이었다. 그것은 한 점 의심 없는 순수한 믿음이지만 동시에 성찰 없는 타성적 믿음이기도 했다. 반면 세속주의와 더불어 등장한 근대의 종교 신앙은 개개인의 선택과 결단을 내포한다. 신앙은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강한 ‘자의식’을 요구하게 된다. 정교분리가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근대국가는 신정국가가 아니라 세속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대의 세속주의는 종교의 쇠퇴와 신앙의 약화를 초래했을까? 역사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넓이’에서는 잃었지만 ‘깊이’에서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신앙심과 세속화는 반비례한다. 하나가 내려가면(세속주의가 만연되면) 다른 하나는 올라간다(신앙심은 고양된다). 미국 예일대 교수를 지낸 역사학자 헥스터는 이를 ‘시소 이론’이라고 이름붙였다. 근대 종교는 습관적·타성적인 종교 활동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의 공평무사한 직무 수행 등 내면화된 신앙을 강조한다. 종교개혁자들의 직업소명설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국 개신교의 좌표는 아무리 봐도 근대보다는 중세 쪽이다. 맡은 바 직분을 신 앞에서 정직하게 수행하여 삶 속에서 선한 열매를 맺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온갖 불법·비리·탈법을 저질러 세인의 지탄을 받는 인사도 타성적인 일요일 교회출석과 다년간의 주차 안내봉사 등 외형적 조건을 충족시키면 무난히 장로 직분에 오른다. ‘삶 따로, 신앙 따로’의 따로국밥 신앙이다. 그렇게 그러모은 재물의 일부는 헌금으로 바쳐져 웅대한 성전(?) 건축에 요긴하게 사용된다.

종교개혁 전야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면죄부를 판매한 돈으로 건축된 로마의 대성당들 말이다. 개신교는 중세 말기의 부패한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몸은 21세기에 있지만 정신은 중세에 붙잡혀 있는 시대착오의 현장이다. 경찰청장이 ‘전국경찰복음화 대성회’라는 종교 포스터에 등장하여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지만 개신교의 시대착오를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정교분리를 명시한 헌법 제20조를 무시하는 태도나(우리나라는 근대국가, 세속국가다), 이웃에 대한 배려 없는 오만과 무례는 중세 종교의 자연스러운 열매로 보인다.

‘철부지’의 ‘철’은 원래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알지 못한다’는 한자말인 ‘부지(不知)’가 합해져서 ‘철부지’라는 말이 생겼다. 계절 바뀐 줄 모르는 철부지 개신교여, 시대착오의 미망에서 벗어나라. 중세는 오래전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