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배들

[전희채 님] <장기려 그 사람>을 읽고

안티고네 2007. 6. 17. 21:48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초여름 주일을 잘보내시고 계시겠지요..

 

어제 토요 휴무라 금주의 북한산행은 어제 다녀오고...

오늘은 진작 아침부터 방청소, 꽃에 물 듬뿍주기(아내의 주장?), 간단한 운동등을 

끝내고...그래도 시간이 꽤 걸립디다....

 

어머니, 안사람, 아이들 모두 교회간 틈에 정말 오랜만에 조용한 

저 혼자만의 주일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읽다 만 책, "장기려, 그 사람"을 오늘은 쫑내려고 어머니가 평소 쉬시는

앉은뱅이 의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너시간에 걸친 끝에 완독했습니다.

 

계속되는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으로 촉촉히 젖어있던 마음이,

끄트머리부분의 선생의 장례식을 묘사한 장면에 이르러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내리쏟게 하였습니다.

 

이 방 저방에서 오수를 즐기는 가족들이 들을새라 

숨죽여 흘리는 눈물이 더욱 복받치는 눈물로 해서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감상을 책 말미에  적어두었습니다.

 

 

 

"눈물로 이 평전의 일독을 완료함.

읽는 내내 이 분의 진실과 성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은 고민이 

생애 그 자체인 것임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내겐 정말 "먼 꿈"이겠지만, 현재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신앙에 대한 

관념, 그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더욱 동일한 신앙인으로서의

진심어린 존경을 금치 못하다.

이 분의 삶 하루하루가 이토록 치열했음을 본다.

자신과의 싸움에 있어....자신을 치는 투쟁에 있어...

---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을 그 분께 헌신하고자

했던 과정 그리고 결과로서의 치열함이었다. 

 

김교신 선생의 글을 읽으며 느꼈던 그런 감동의 눈물이 내내

가슴을 적셨다. 

 

나의 주여!

감사하나이다!

이러한 분을 글을 통해서나마 알게 해 주신것을....

오늘 주일, 일상에 침잠해 있던 이 놈의 영혼에 부활을

허락하신 것을....."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기독교윤리학을 가르친다는 박충구 교수의 

선생의 신앙여정에 대한 지적은 그대로 평전 전체의 결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장기려선생이 '종들의 모임'과 관계한 것은 "복음에 성실한 삶에 

대한 그 분의 끝없는 자유로운 모색"의 결과이며, 

기존의 제도화된 종교들이 "진리를 알지니 너희가 진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이 지시하는 자유를 삭제하고, 

세속적 가치들과 타협한 권위주의, 

복음과 상관없는 율법주의, 

그리고 세상의 삶과 교회생활을 나누는 

교회중심주의의 이기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도적 종교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기려 장로님은 신앙생활 자체가 현실이었고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껍데기가 필요 없었지요.

그래서 무교회주의도 가능하였고요...

한마디로 신앙이 삶이었던 것이죠.> 

 

 

선생의 마지막 신앙생활의 중요한 모임이었던  "종들의 모임"에서

선생을 나오게하여 다시 자기들의 교회에 다니게 하려고 고신교단의 목사들이

그 모임에 일부러 참석을 했을 때에 벌였던 유명 목사들의 행태를 보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고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그때는 무더운 8월의 여름이었다. 

'종들의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는 종들은

모두가 검소한 데다 옷에 대해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다. 

그날도 한 종 이 자신이 세탁하여 깨끗이 다려 입은 흰 남방을 입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어서는 순간

고신 교단의 한 목사가, 

"갑시다. 들을 것도 없습니다. 보면 모르겠습니까.

넥타이도 안 매고 말이지. 뭐 들을 게 있겠어요"

라고 말하니 모두가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런 상황을 알리 없는 선생은 모임을 마치고 손동길에게, 

"목사님들이 오셨던 것 같은 데 잘 듣고 가셨나....."

"넥타이 안 맸다고 들어 볼 것 없다면서 모두 갔어요"라고 했더니 

선생도 한심했던지, 

"넥타이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들을 자격 없지. 예수님이 넥타이 맸냐!"

라고 했다.> 

 

 

선생의 말년의 "종들의 모임"에 대한 선택 및 다시 받은 세례, 그리고 출석하던 교회

에서 문제가 되었던 십일조에 대해 손봉호 교수는 분명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그 선택을 옹호했다는 글이 있습니다.

 

<장 박사님께 문제가 되었다는 십일조 문제도 그렇습니다.

난 십일조를 교회가 강조하는 것은 좀 죄송한 표현이지만

일종의 사기 생각합니다.....? >

 

 

선생의 생애 전체는 한 마디로 요약되기는 어렵겠지만 그 방향, 그 목표는 다음의 내용에서

잘 읽을 수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평전에서 지적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자면...

 

<선생은 사회의 모든 부패의 원인이 종교에 있다고 확신했다.

종교의 부패로부터

모든 영역이 뒤틀리고 오염되고 변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숭배하지 않고

종교라는 간판을 내세워 이익을 탐하거나,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숭배하다가는

정치.경제.교육.문화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평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염의 근원인 종교를 청결케 하는 일이다.> 

 

 

우찌무라간조선생의 다음의 글이 생각납니다.

 

<야곱의 신앙은 율법의 신앙이었다.

베드로의 신앙은 훈련의 신앙이었다.

바울의 신앙은 신앙의 신앙이었다.

그리고 요한의 신앙은 사랑의 신앙이었다.

4대 사도는 기독교의 4대 주의를 대표한다.

나는 특히 요한의 주의를 택하는 자다.>

 

<바울은 신앙의사랑을 비교하여 말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불완전한 것이 사라지리라'

(고린도전서 13:10). 신앙앞에서 율법이 폐해진 것처럼,

사랑 앞에서는 신앙이 폐해져야 한다. 신앙이 율법에

대치되었을 때 기독교의 제1혁명이 있었다. 사랑이

신앙에 대치될 때 그 제2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이제 저도 나이가 드는 모양입니다.

하기야 벌써 내년이면 쉰나이도 반을 넘어서는 기로에

있게됩니다. 두 분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제 인생에 있어, 

장기려 선생의 '종들의 모임'만큼이나 커다란 크기로

와닿고 있습니다.  드리는 것 없이 늘 받는 제 모습이 다소

스스로 안쓰럽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다음 주말이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장마 전에 시간 되시면 아무 때나 천안 은석산에서

뵈면 어떨 는지......

 

은혜의 빛 가운데에 있으시길.....

 

전 희채 올림.